과학과 기술. 분명 예전엔 따로 구분지을 수 있을만큼 어떤 경계가 있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그게 아닌 듯 싶다. 무엇이 과학이고 무엇이 기술인가? 사전 들여다보면 분명 나름대로의 정의는 있겠지만, 이 글에서 나는 그것에 대해 특별한 구분 없이 '기술' 이라는 단어로 통일한다.
기술은 끊임없이 발전해왔고, 지금도 발전하고 있다. (뻔한 이야기로 시작하다보니 말문이 턱하고 막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전의 글에서도 나는 기술의 발전을 경험에 비추어 몇 자 적은 바 있다. 컴퓨터 성능의 발전, 인터넷 기술의 발전, 휴대 전화 기술의 발전 등... 불과 20 여년만에 이루어진 기술의 발전은 그 이전에 비해 말도 못할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실제 우리가 접하고 있는 기술은 이미 4~5년 전에, 혹은 그보다 훨씬 이전에 제안되어 구현에 이른 기술들이다. 그것이 상용화 과정을 거치는 기간 덕에, 사실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기술은 4~5년 전의 기술이라고 보면 된다. 요즘은 그 간격마저도 좁아져서 1~2년 전의 기술이 벌써 상용화되어 나타나곤 한다. 앞으로는 그 간격이 더 짧아질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4~5년을 아니, 짧게봐서 1~2년을 내다보고 있는 기술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기술 분야에 깊은 관심이 없다고 하더라도 대충 짐작은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흔한 말이 되어버린 유비쿼터스, 지능형 로봇, RFID, 그리드 컴퓨팅... 넘치고 넘쳐서 하나 하나 나열하기엔 필자의 폐활량이 견디질 못한다.
하지만 재미있는 사실은, 위에 열거한 기술들은 이미 소개된지 상당히 오래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기술들은 생각 이상으로 오랜 기간 동안 연구 상태에 머물러 있으며, 아직 상용화 단계로 넘어가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이 글은 극히 주관적인 관점에서 쓰여지고 있다)
왜? 그만큼 어려우니까. 사람을 직접 편하게 해주는, 다시 말해 실생활에 매우 밀접하고 바로 접할 수 있는 기술들은 생각보다 쉽게 개발되고 단기간 내에 상용화 단계를 거쳐 대중에게 공개된다. 전구, 손톱깎기 (극단의 예) 뭐 이런 것들 말이다. 대부분은 기술의 범위가 상대적으로 좁기 때문에 개발 일정이 빠르게 진행된다. 하지만 위에 열거한 기술들은 상황이 좀 다르다. 일단 기술의 범위가 너무 넓다. 그리고 매우 복합적이다. 이름은 하나이지만 그것이 물고 있는 기술이 한두개가 아니다. 그러다보니, 각 기술간의 협의 과정에 수년을 투자하게된다. 인간을 위한 기술이라고는 하지만, 결국 그것을 연구하는 사람도 인간이고 먹고 살아야하다보니... 밥그릇 싸움도 무시하지 못하리라. 표준 싸움에서 지면 자신들의 밥줄이 끊김과 동시에 그동안의 연구 결과가 휴지 조각으로 전락해버린다. 따라서 협의 과정은 치열한 장기전이 되어버린다.
이렇게 복합적으로 연결된 기술은 특징이 하나 있는데, 기술 대부분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소 흥미로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기술 자체는 눈에 띤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기술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뒤에 숨어있는 기술들은 그 숫자만으로도 보이는 기술을 압도하지만 그 기능으로도 큰 몫을 차지할 것이다. 영화로 비유하자면, 스텝과 시스템이랄까? 영화는 결국 배우와 그의 연기에 의해 대부분의 평가가 매겨지지만, 사실 그것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스텝과 시스템의 역할이 가장 컸으리라...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 보이는 부분이 그래서 중요하지 않다거나 별볼일 없다는 것이 아니다. 단지 뒤에 숨어있는 부분들에 대한 안타까움이랄까?
기술은 이제 인간의 행위를 편리하게하는 도구를 지나 인간의 행위 그 자체를 모방하기에 이르렀다. 현재의 로봇들을 보라! 그것은 다소 멍청하지만 사람처럼 걷고, 사람처럼 말하며, 사람처럼 행동한다. 현재의 연구 추세는 이러한 로봇에 '지능' 을 덧붙이려하고 있다. 지능형 로봇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것이다. 로봇은 앞으로 사람이 하는 말을 알아듣고 적절한 판단을 통해 스스로 행위를 결정하는 단계에 이를 것이며,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인공 지능은 수십년이나 질질 끌어왔지만, 그것은 당시의 컴퓨팅 파워 부족, 분산 환경에 대한 기반 구조의 부재 등 연구를 위한 밑바탕 기술의 한계 때문이었으리라. 밑바탕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지금, 그것의 진행 속도는 점점 더 가속될 것이다.
하지만 다소 걱정스러운 것은, 기술이 인간의 행위를 모방함을 넘어 인간을 대신하려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것이다. 무엇을 위한 기술인가? 질문에 대한 철학적인 접근은 답을 알 수 없게 만드는 위험이 있지만, 기술자 혹은 연구자들은 한 번 쯤 생각해 볼만한 문제가 아닌가 싶다. 과연 내가 하는 일이 인간을 위한 기술인가? 아니면 인간을 대신할 기술인가?
또다른 관점에서, 특히 유비쿼터스 (혹은 홈네트워킹) 분야를 볼 땐, 기술은 인간의 행위를 제한하려 드는것이 아닐런지... 물론 기술 그 자체는 인간의 행위를 편리하게 하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만, 그것은 해석하기에따라 행위를 제한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주민등록증에 전자칩을 내장한다거나, 사람의 몸에 직접 칩을 심는 행위 등은 기술이 인간의 행위를 제한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기에 충분하다.
물론, 기술을 개발하고 연구하는 그 누구도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서 접근하지는 않는다. 쥐꼬리만한 월급 받아가며 주말도 없이 매일 밤을 세가며 연구에 몰두하는 그들은 정말 다 착한 사람들이다. (담배 꽁초를 함부로 버리는 일은 있지만, 본격적으로 세계 정복을 꿈꾸진 않는다) 하지만 E = mc^2 에서 비롯된 무서운 과거를 회상하면 조심해야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