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드디어 제로의 영역에 도달했다.


... 그러나 아쉽게도 당신이 상상하는 제로의 영역과는 거리가 멀다. 체력, 근력, 지구력이 모두 제로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단 말인가! 축제 마지막날 풋쳐핸접 두 시간 했다고 3일을 알아 눕질 않나; 간만에 15점짜리 농구 한 게임 했다고 죽네 사네 하면서 헉헉거리질 않나... 아아~ 어쩌다 이렇게 되었단 말인가!

어느날 세수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부드러워진 인상을 보고 감탄한 적이 있다. 나는 인상이 더럽다. 날카로운 눈매(좋게 표현하자면)와 살짝 튀어나온 광대뼈 덕분에 맘만 먹으면 상당히 더러운 인상을 지을 수 있고 맘을 먹지 않아도 그런대로 더러운 인상이 나온다. 게다가 드물게 겉과 속이 같은 남자인지라, 말투도 싸가지 없고 행동도 싸가지가 없어서 중학생 시절엔 친한 친구에게 조차 오해를 사곤 했다. 싸가지 없는 버릇은 고등학생 시절 상당히 고쳐졌다고 자타가 공인하지만 그럼에도 요즘 오해를 살만한 행동을 자주 저지르고 집에 와서 흐느끼곤 한다. 그런 내가 거울을 보고 스스로 인상이 부드러워졌다고 생각한 것이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드디어 내가 착해졌나 싶었다. 아니었다. "너, 살 찐거 아니니?" 엄마가 조심스레 말했다. 집에는 체중계가 있다. 몸무게가 불었다. 얼마만에 제어본건진 기억에 없지만 아무튼 내가 생각했던 몸무게에서 4키로가 불어있었다. 그렇다. 나는 살이 쪘고 덕분에 얼굴 그늘이 사라져서 부드러운 인상을 자아낸 것이었다.

인상만 좋아진 거라면 이대로도 좋다. 그러나 아랫배가 나왔다. 마치 고 3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다. 많이 나왔다. 이대로 방치해두면 조만간 허리띠를 잡아먹을 기세다. 미친 뱃살. 오랜만에 집에 들른 동생이 보고 말했다. "오빠 왜이래?" 그럴만도 하지. 살이 찌는 체질이 아닌 내가 디륵디륵 쪘드니...

이유가 뭘까? 곰곰히 생각할 겨를도 없이 수만가지 이유가 나왔다. 첫번째 이유는 야식이다. 두 달 전 쯤. 짜파게티에 미쳐살았다. 보통 집에 들어오면 밤 12시 쯤 되는데 배가 출출하다. 나는 배가 고프면 잠을 못잔다. 짜파게티. 우리집 김치는 짜파게티와 환상의 조화를 이룬다. 게다가 새로 발견한 조합 하나! 짜파게티 + 김치 + 참치는 그야말로 환상의 조화! 마치 입안에서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맛과 씹히는 감촉이 예술이다. 그런 생활이 한달 이상 지속되었다.

두번째 이유는 불규칙한 생활이다. 한창 바쁠 때 새벽 3~4시까지 코딩에 미쳐있었다. 그런 생활이 지속되다보니 요즘도 3시 전까지는 불안해서 잠을 못잔다. 뭔가 할 일이 있지 않았나? 일이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일이 없어도 불안해서 3시까지 인터넷과 TV를 오가며 시간을 때운다. 아마 군대 스케줄처럼 밤 10시에 자고 새벽 6시에 일어나기만 한다면 한달동안 2~3키로는 빠질거라 생각한다.

셋째는 바로 제로의 영역이다. 그렇다. 제로의 영역에 도달했다. 운동과 담을 쌓았다. 재작년에는 그나마 헬스라도 했다. 그땐 헬스에 미쳐있었지. 관장님이 유독 나를 좋아하는 바람에 첫날부터 4시간동안 강훈련을 시켰고 다음날 끙끙 앓고 있는 나를 불러 또다시 4시간. 그렇게 한달동안 4시간씩 꼬박꼬박 헬스를 한 덕에 배에는 어설픈 王자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인덕이 쌓여있다.

다이어트를 해야한다. 엄마말로는 일단 커피를 줄이란다. 그렇다. 요즘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셨다. 작년까지만해도 하루 한 잔 정도였는데 요즘은 하루 넉잔이 보통이었다. 일단 커피는 끊었다. 단 블랙커피를 마신다. 하루 4시간 텀으로 시간 맞춰 세 잔씩 마셔주면 체지방을 감소시킨단다. 믿을 수 있는 정보라더라. 일단 4시간 텀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지는 않지만 다방커피는 확실히 끊었고 블랙커피를 하루 두 잔 정도 마시고 있다.

규칙적인 생활 습관. 새벽 3시에 자고 오전 11시에 일어나는 이런 규칙적인 생활 말고. 12~1시 쯤 잠들어서 6~7시쯤 일어날 수 있는 생활 습관을 길러야겠다. 물론 아직 시도도 못했다. 아직도 잠들기 전까지 불안함은 여전하다. 하지만 일단 건강이 우선! 뱃속에 자리잡은 인덕을 빼야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살이 찐게 무척 싫다. 자기 관리를 못하는 사람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이모양이니 얼마나 자학하겠는가! 생활 습관을 바꿔야 한다.

생활 습관이 바뀌면 이른 오전에 헬스를 고려해봐야겠다. 다행히도 우리 연구실은 출퇴근 시간에 제한이 없다. 그래서 늘 12~1시나 되어야 출근한다(나만;). 오전 8시쯤 헬스를 시작해 하루 1시간 반만 해도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등교할 수 있다. 운동을 해야 한다. 제로의 영역은 함부로 들어갈 곳이 못된다. 여기에 발을 들이게 되면 적응하는 자신도 문제지만 그와 함께 자신감이 결여되어가는 모습이 현저하게 보인다. 나의 미친 자존심과 자만심. 이게 요즘 후달린다. 작년까지만 해도 그 미친 자존심과 자만심으로 떵떵거렸는데 요즘은 뱃속 인덕 덕분에 느긋 느긋거리고 인자함이 철철 넘친다. 이건 내가 아니다.

다이어트.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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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소나무 2006/05/23 18: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짜파게티...공감입니다. 라이프사이클이 비슷하시군요. 업체접대 및 직원회식 때문에 술과 겹살을 많이 복용했었거든요. 아랫배는 물론 배둘래햄이 심각해서 한 3개월 됐네요. 하루에 한끼정도만 먹고 있습니다. 중간중간 간식 좀 먹어느끼 빠지데요.
    하지만 5%의 보스뱃살이...쉽지 않군요. ㅡㅡa

    1. semix2 2006/05/24 13: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들리는 소문엔 너무 적게 먹으면 뱃속의 그지들이 먹은걸 쌓아놔서 살이 찐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보스 뱃살... 남 이야기같지 않아서 큰일입니다.. T_T

  2. 2006/05/24 01: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쌔미횽... 뱃살 넘 멋져요.. >.<
    ㅋㅋ
    그래도 다이어트하면 더 멋질거에요..^^;;

    1. semix2 2006/05/24 13: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나 다이어트 성공하면 연예계로 진출할거야

  3. SsemS 2006/05/24 02: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순간 제로의 영역이라해서 놀랬잖아;
    나 지금 사이버포뮬러 보는데마랴; 달라도 너무 달라- ㅋㅋㅋ
    난 제로의 영역에서 24년째 버티고있어- 난 역시 대단해

    1. semix2 2006/05/24 13:24 댓글주소 수정/삭제

      ㅋㅋㅋㅋ 사실 카가의 제로의 영역도 비슷한거야. 걔도 보니까 배나왔더라. 오빠도 조금더 노력하면 카가같은 레이서가 될 수도 있겠지만, 일단 다이어트를 하기로 했어. ㅋㅋㅋㅋ 하지만 24년된 배터랑에겐 역시 번데기 수준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