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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부터 심하게 진행되었던 슬럼프. 자잘자잘한 슬럼프야 종종 있지만 이번처럼 수 개월에 걸친 슬럼프는 이번이 두번째인 것 같다. 고 3 때가 한 번 그랬고, 이번이 그랬다. 너덜너덜해지면 그나마 낫지, 이건 자학을 넘어 이중생활을 하고 있는 기분. 그저 붕 뜬채 나는 뭘 하고 있나-

갑작스래 찾아오는 슬럼프는 어찌 해 볼 도리가 없나보다. 나름대로는, 상당히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움직이는데도, 정말 방법이 없다. 연초부터 뭔가 다르게 느껴지는 시야. 내가 뭘 하고 있나? 그동안 쌓아왔던 가치관이 무너지는 순간. 어? 이게 아닌데. 이런 느낌이 아니었는데...

이런 상태가 6개월이나 지속되면 그것도 병이다. 정말 별별 생각을 다 해보고 별별 처방을 다 해봐도, 답이 없다. 아니, 있으면서도 없다. 이게 미칠 노릇이다. 하루 하루 느껴지는 감정이 다르고, 보이는 시야가 달라져버리니. 이상하다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저 답답하고 답답해서, 차근 차근 곱씹어보고, 다시 또 답답해한다. 그런 6개월. 제대로 공중부양을 하셨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변화에는 왜이리도 둔한 걸까. 지금은 조금씩 보이는 듯 하다. 사실, 많이 보인다. 그리고 많이 변했고, 다시 돌아왔다. "참 이상한 사람이야" 라는 말을 듣고는 "다행이다, 돌아왔어!!" 라는 확신이 들었다. 다시 나로 돌아왔다는 안도감. 그리고 넓어진 시야. 좀 더 넓게 내다볼 수 있게 됐다. 정말 잘됐어.

슬럼프를 빠져나오면서, 나는 요즘들어 많은 시도를 한다. 첫째로 오전 등교. 학부 4년을 포함한 6년동안 9시에 등교하는 건 미친짓이라고 생각해왔는데 벌써 4주째 이어지고 있다. 오전을 활용하는 센스쟁이, 오후를 활용하는 센스쟁이. 방학이 시작되면서 날라드는 미친듯한 스케줄덕분에 오후 활동에 차질이 생기고 있지만, 조만간 원상 복구가 될 것 같다. 점심엔 얼음가득 헤이즐럿 마시러 1시간은 나갈거구요, 오후 8시부터는 업무 접습니다-

두번째는 악기. 기타를 배운다. 오래전부터 예술에 흥미가 있어서 미술과 음악에 관련된 뭔가를 해보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 다만, 학부 1학년 때 제대로 말아먹은 기억이 늘러붙어서 시도조차 못하고 있었던, 어쨌든, 나는 지금 기타를 배우고 있고, 기타왕이 될 것 같은 자신감을 키워가는 중이다. 엉성하게 그만 둘바엔 손도 대지 않았을 거, 제대로 배워서 내년 중에 내 노래를 하나 올릴 예정이다.

세번째는 만남. 어째 연구실 생활이 길어지면서 나는 사람 만나는 것을 극도로 피해왔던 것 같다. 사실은 연구실 생활 때문이 아니다. 나는 대인 관계에 자신이 없고, 잘 피하는 편이다. 그게 계속 쌓여가다보니 그렇게 된거다. 뭔가 정리된 듯 한 지금,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오랫동안 온라인으로만 알고지낸 라키와 인사를 나눴다. 이 여세로 이번엔 오랫동안 찾아뵙지 못한 선생님을 찾아뵐 생각이다.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이 이렇게나 즐겁고 흥분되는 일은 처음이다.

네번째는 여유. 어째 쓰다보니 순서가 꼬인다. 알게 뭐냐. 나는 최근들어 굉장히 여유롭다. 정말 3년동안은, 여유가 사치라고 생각해왔다. 지금도 주절거리는 자학이론, 자는 시간이 아깝고, 노는 시간이 아깝고, 소설책 볼 시간이 있으면 전공을 보던가. 늘 이런식으로 생각하고 산다. 하루를 곱씹어 후회하고 자학한다, 내가 놀 때가 아닌데! 라면서. 나는 지금 굉장히 여유롭다. 점심 시간에 짬을 내어 얼음이 가득한 헤이즐럿을 마시며 황홀 속에 빠져들기도 하고, 저녁 시간 학교를 산책하면서 '우리 학교가 이렇게 생겼나?' 하고 놀라기도 한다. 덕분에 두통이 꽤 줄었다. 가방 속에는 여전히 버릇처럼 타이레놀을 갖고 다니지만 한달 내내 거의 꺼내는 일이 없는게 너무나 신기하다. 하루가 알차다는 생각에 보람마저 느낀다. 정말 놀라운 건, 소설책을 읽었다.

별것 아닌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겐, 최근의 이런 변화가 거의 혁명과도 같아서 상당히 들떠있다. 참 고마운 사람이 있는데, 말하면 콧대가 하늘을 찌를 것 같아서 꾹꾹 참을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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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쯔히로 2007/07/24 06: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으~흐 좋은 현상일랑가요!
    음... 마지막 내용이 어쩐지 훈훈해서-_-;;

    사람이 슬럼프 상태일 때에 특히 더 불안해 지는 이유중 하나가
    이 상태가 쭉 유지돼서 그 불안한 변화 상태가 현재가 될까 하는 이유가 아닌가 싶어요.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당장은 정말 어려운 상황이니까..
    그리고 역시 극복 못하고 그게 내 모습의 기준? 이 되어버리면, 괴롭겠죠-_-;

    그냥 성공하는 사람도 되고 싶고 뭔가 잘 되고 싶기도 하지만
    역시 살아가면서 주변이 그렇게 좋다는 걸 모르고 살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글타고 입에만 즐거운 것을 찾다간 몸을 망치기 십상이겠지요.
    요 근 한달간 제 모습은 단지 즐겁기위한 일들만 찾아 한 것 같아요.
    적당한 선을 찾아야겠습니다 ㅠㅠ

    에 근데 드라마 인건가요?ㅎㅎ

    1. semix2 2007/07/25 01: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드라마는, 극적인 사건이나 상황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랍니다. 네이버 국어 사전에 그렇게 쓰여있어요. ㅋㅋ

      요즘은 정말 작은 일에 큰 감동을 느끼고 있답니다. 정말 폐쇄적으로 살아왔구나 싶을 정도로 말이죠;; 즐겁기 위한 일들만 골라하는 것도 능력인데요 뭘, 전 워낙 아무것도 안하고 지냈더니 정말 별 것 아닌 일도 즐거워 죽겠습니다. ㅋㅋㅋㅋ

  2. furang 2007/07/25 16: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건 희망의 수필.

    빠릿빠릿 슉슉슉-
    (훗- 저기 가고 있군.)

    1. semix2 2007/07/26 00: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낄낄- 살짝 보일랑말랑하게 슉슉슉거리는거야-
      따라와보라고- ㅋㅋㅋㅋ

  3. 홍만 2007/07/29 19: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힘내요 형
    ㅅ랑해요

    1. semix2 2007/07/30 00:43 댓글주소 수정/삭제

      홍만아- 나도 널 사랑해- ㅋㅋㅋㅋ
      네이트온에서 너 생일이라던데, 사실이야? 축하해!! 학교 좀 놀러와! 니 품이 그리워- ♡

  4. Mong 2007/07/31 18: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_- 미틴...

    1. semix2 2007/08/01 0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ㅋㅋㅋㅋ 참~ 형다운 댓글이다;; 학교 좀 놀러와, 요즘 싸울 상대가 없어서 심심해죽겠어. 연구실 왕고 이거 생각보다 재미없고 신경쓰이는 일이 많아;; 엉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