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부터 자넬 쭈욱 지켜 봐 왔다네.
나는 이해와 끈기가 굉장히 부족하다. 어릴 때 기억 중에 엄마에게 크게 혼난 기억이 두 개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이해력과 관계가 있다. 초등학생시절, [탐구생활]을 한번에 몰아서 풀고 있는데 당연히 엄마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엄마가 대신 해 준 건 아니고, 과외 같은 거 랄까나? 아무튼, 흐린 기억이지만 사칙 연산과 관련된 거였던 것 같다. 난 이해가 되지 않으면 다음으로 넘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한 곳에서 막히면 정말 답이 없는 님이다. 덧셈과 뺄셈이 참으로 어려웠달까나. 머릿속에 수평선을 그리고 단위마다 표시를 한 뒤 앞뒤로 움직이는 걸 그릴 수 있기 전까지는 도무지 덧셈 뺄샘을 할 수 없었고, 그 날 엄마가 쥐고 있던 연필이 부러졌다.
이해, 지금도 여전히 이해가 딸린다. 남들은 한번에 쑤욱쑤욱 이해하는데 나는 그게 안된다. 오랜 경험으로 보아 이건 노력으로 커버하는 수 밖에 없다. 그냥 계속 보면 되더라. 남들 한 번 볼 때 세 번 봐야 하면 그냥 세 번 보면 된다. 시간이 더 드는건 어쩔 수 없다. 그냥 시간을 더 들이면 된다. 이것 만큼은 어쩔 수가 없더라.
끈기, 아아- 끈기. 나는 뭔가를 오래 하지 못한다. 이건 특히나 게임 같은데에서 그 성격을 발견할 수 있는데 롤플레잉 게임 같은거 죽어도 못한다. 정말 초반에 움직이는 거 보고 "와- 이거 그래픽 죽인다-" 하고 굉장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정작 몹 한두마리 잡고는 못하겠다고 때려친다. 요즘 대세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역시 나는 손을 대지 않는다. 난 와우를 보면, 새를 타고 새를 조종하는 것 외에는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그래도 남들이 이런 저런 이야기 해 주는 건 재밌더라)
나는 생산하는 것을 좋아한다. 더 정확히는 머릿속에 어떤 그림을 그리고 그걸 다듬어서 구체화하는 과정을 굉장히 즐긴다. 마치 구름이 머릿속을 둥실둥실 떠다니다가 어떤 형체를 이룰 때 어떤 목적이 생기고 어떤 제약이 생기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선을 긋기 시작한다. 이런 저런 선을 그어서 둥글둥글했던 것들이 각이 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손을 쓰기 시작한다. 이럴 땐 연습장보다 화이트보드가 훨씬 낫다.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다보면 어느 순간 정말 마음에 드는 그림이 완성된다. 이 때의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프로그래밍이 천직이기보다는, 공대 나와서 할 줄 아는게 그것밖에 없기에 나는 재빨리 코드를 작성한다. 흥미가 진진한 날은 일주일 정도 반쯤 풀린 눈과 썩소를 머금은 체 정신없이 코드를 써 내려간다. 이미 그림은 그려져 있기 때문에 정말 미친듯히 손가락이 움직인다. 마치 굉장히 빠르게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처럼. 나는 이럴 때 스스로 멋지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코딩을 하는게 아니라 연주를 하고 있고, 코드를 작성하는게 아니라 노래를 작곡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프로그래머이기보다는 아티스트이고 싶은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활용하는 것에 약하다. 열심히 연주해서 만든 작품을 막상 이용하려고 할 땐 힘이 빠진다. 정렬을 쏟아부어 어떤 작품이 완성되었는데, 그 때 모든 희열과 감동을 느끼고는 그만 힘이 빠져버리는 것과도 같다. 만사가 귀찮고 머릿속엔 '아- 이제 이걸 이렇게 해서 이렇게 쓰면 되는데-' 하는 생각이 맴돌 뿐 몸은 그냥 널부러져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이런 날은 정말 쓸데없이 시간만 축내고는 '나름대로 바빠' 라고 말한다.
아키텍트를 목표로 하면 그런대로 쓸만한 성격일지도 모르겠는데, 지금 당장은 그게 아니니 참으로 난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