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반 TV 접하기가 어렵다. 죄다 스마트 TV, 또는 3D TV가 광고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데 3D TV 또한 스마트 TV에 속할 수도 있다는 가정하에 그냥 다 싸잡아서 스마트 TV라고 부르련다. 그런데 가만, 스마트 TV가 대체 뭐지?

요즘 업계는 '스마트' 열풍이다. 아무래도 스마트폰의 영향이 크겠지. 그래서 스마트하다-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스마트폰을 잠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스마트폰이라, 어디까지 과거로 돌아가야할까. PDA? 윈도우 모바일? 아니다. 지금의 유행을 이해하려면 그 이전의 역사도 물론 중요하지만, 아, 그래, PDA와 윈도우 모바일은 스마트폰 이전의 역사다 - 스마트폰의 역사는 아이폰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핵심은 인터넷. 분명 PDA나 윈도우 모바일도 인터넷은 되었지만 대중화에 실패했기 때문에 문화를 형성하지는 못했다. 피처폰 사이즈, 그리고 구매력 강한 가격으로 등장한 아이폰. 그 동안 피처폰에서 보여준 제한된 인터넷 대신 데스크탑 PC에서와 동일한 풀브라우징을 선보이면서 언제 어디서나 '정보' 를 보다 쉽게 취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뒤 iPhone OS SDK와 앱스토어를 지원하면서 정보를 얼마나 쉽고 재미있게 다룰 수 있는가가 핵심이 되었고 이로 인해 현재의 '스마트한 문화' 가 형성되었다고 본다.  

그래서 스마트 TV란 기술적으로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고, 다양한 앱을 내려받아 쉽게 기능을 확장할 수 있는 TV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볼 수 있겠다. (사전적 정의는 다를 수도 있다. 이 정의는 철저히 주관적이다) 폰이나 태블릿처럼 이동성을 고려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유선 랜을 통해 고속의 안정적인 네트워크 상태를 유지할 수 있고, 베터리나 크기의 제한이 비교적 적은 편이라 메모리나 디스크의 용량도 마음껏 키울 수가 있다. 사실 이쯤되면 일체형 PC와의 차이점이 불분명하다.

어쨌든 지금은, 일반 TV로는 명함을 내밀기 힘든 유행을 타고 있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는 '스마트 TV로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다. 기기 특성을 고려해 최적의 사용자 인터페이스와 디자인을 고집하는 애플과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담고 싶어하는 구글이 생각하는 가능성은 서로 판이하게 다르다.

애플의 경우 적어도 현재는 TV 그 자체를 개선할 마음이 없는 듯 하다. 그 보다는 애플 TV라는 주변 장치를 통해 TV의 기능을 확장하려 하고 있고, 이는 사실 TV의 기능을 확장하기 보다는 TV가 갖고 있는 출력장치를 응용하려고만 하는 약간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애플 TV를 연결하면 아이튠스에 접속해서 영화나 드라마를 시청하거나 PC의 아이튠스를 네트워크로 연결하여 동영상이나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유투브나 비메오 같은 사이트에 등록된 영상을 시청할 수도 있다. 고작 이 정도였기 때문에 '소극적' 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조만간 발표될 iOS5로 인해 응용 분야가 엄청나게 넓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iOS5는 애플 TV를 인식하여 서브-모니터로 활용할 수 있게 해 주는데 이를 통해 다양한 응용 서비스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닌텐도 U가 보여준 것 처럼 TV와 아이폰/아이패드를 함께 연계해서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고, 넷플릭스 등의 스트리밍 앱들은 TV로 영상을 송출하고 동시에 아이폰/아이패드에는 영상에 대한 정보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등을 표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여기서의 핵심은 앱을 실행하는 주체는 아이폰/아이패드이고 TV는 그저 서브-모니터라는 것이다. (왼손은 그저 거들 뿐!)


반면 구글의 경우, 이들은 철저히 공대생 집단이다보니 지금까지 나온 가능한 모든 기술을 TV에 구겨넣고 있다. 덕분에 안드로이드 OS를 거의 변형없이 TV에 내장시킨 덕에 TV로 안드로이드 마켓 플레이스에 접속하여 앱을 내려받아 실행시킬 수 있다. 하지만 TV는 터치 패널도 아니거니와, 억지로 터치 패널로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고 (TV 바로 앞에 서서 TV를 볼 순 없지 않은가) 그래서 등장한 키보드 타입의 리모컨은 굉장히 억지스럽다. 그래도 가능성을 따지고보면 애플 TV보다는 구글 TV가 훨씬 높지 않을까?


우리는 사실 스마트 TV의 가능성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실은 우리뿐만 아니라 스마트 TV를 설계하는 애플이나 구글, 그리고 그것을 실제로 만들어 파는 제조사 역시 잘 모르고 있다. 막연히 '이제 TV도 스마트해져야죠, 안 그래요?' 할 뿐이다.

스마트 TV로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이 글에서 나름대로 생각할 수 있는 여러가지 가능성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우선 스마트  TV는 셋톱박스를 밀어낼 것이다. IPTV 등은 양방향 통신과 주문형 비디오 송출 등을 위해 별도의 셋톱박스를 요구한다. 사실 셋톱박스 기기 자체는 별 거 없다.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소프트웨어가 핵심인데 (이렇게 말하면 셋톱박스 제조사가 날 미워하겠지) 이 소프트웨어를 TV가 직접 구동할 수 있게 되면 셋톱박스는 더 이상 필요가 없게 된다. 사실상 셋톱박스가 해 주는 일이 인터넷을 연결해 사용자가 지정한 영상을 수신하는 것인데 이게 유투브 영상 골라 보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셋톱박스를 밀어내고 이것을 앱으로 대체하게 되면 이 때부터는 무한 경쟁 모드에 돌입하게 될 것이다. 셋톱박스를 사용하는 지금은 설치니 뭐니 해서 업체 바꾸기가 번거롭기 그지 없지만, 앱으로 대체되면 그 때는 원-클릭으로 서비스를 변경할 수 있게 된다. 경쟁으로 서비스 품질이 향상될지, 야동이 증가할지는 두고봐야 하겠지만. 일단 경쟁 그 자체는 발전의 촉매제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다. 

IPTV 업체가 앱을 배포하고 더 나아가 그들의 서비스를 오픈한다면, 맞춤형 영상 추천 서비스가 붐을 이룰 것이다. 혹시 아이패드용 ZITE라는 앱을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게 무슨 소린지 단 번에 알아차릴텐데... 뭐, 좋다. 쉽게 생각하자. TV 포탈 서비스가 등장할 거란 이야기다. 우리가 다음(daum)이나 네이버에서 접하는 수 많은 기사들은 그들이 직접 생산한 것이 아니다. 외부 업체와 연계해서 중요하거나 팔릴만한 정보를 추려서 메인 페이지를 꾸밀 뿐이다. 아까 말한 ZITE는 이렇게 메인 페이지 꾸미는 일을 사람이 아닌 알고리즘이 대신할 뿐 차이는 거의 없다. (물론 사람이 개입하지 않기 때문에 현찰이 오가는 정겨운 모습도 없다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영상의 소스가 많아지고, 영상 그 자체도 이미 많아서 결국 우리는 알고리즘에 기대할 수 밖에 없게 될 것인데 아마도 이 때는 구글이 의기양양하게 웃고 있을 것이다. 유투브를 통해 여러가지 실험을 거친 구글은 영상 추천 서비스에 대해 벌써부터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영상에 대한 분석, 음성 인식과 번역 등 그들의 동영상 검색 및 추천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상황이 이렇게 변해가면 이제 IPTV는 슬슬 어둠의 그림자가 몰려오고 다시 한 번 UCC 열풍이 불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때 UCC는 지금 볼 수 있는 아마추어 UCC라기 보다는 아이튠스의 팟케스트와 같은 게릴라 방송 쪽에 가까울 것으로 예상된다. 5분에서 30분 가량 하는 짧고 유익한, 또는 흥미로운 여러가지 주제의 동영상들이 드라마나 예능 프로보다도 인기를 끌게 될 것이다. 어쩌면 앱스토어나 안드로이드 마켓이 과금 체계를 엮어서 독점할 지도 모르고, 아니면 그 자체가 하나의 앱으로, 그리고 그런 앱이 하나 이상 존재할 수도 있겠다. 나는 지금 쉽게 말하고 있지만 이는 기존 방송 체제를 완전히 갈아 엎어버리는 꼴이다. 방송사가 이런 위험에 대해 얼마나 대비하고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반드시 대비해야 할 필요는 없다. 지금 내가 하는 이야기는 전부 나의 주관적인 견해일 뿐, 이렇게 흘러가리라는 보장은 없다)

방송 이야기는 이 쯤 하자. 인터넷과 방송의 차이는 방향성에 있다. 앞으로는 맹목적인 시청이 아닌 적극적인 참여가 핵심이 될 것인데 이로 인해 방송의 포멧도 많이 달라질 것이다. 요즘도 이미 홈쇼핑등은 TV를 통해 바로 물건을 구매할 수 있다. 하지만 더 나아가 앞으로는 이러한 상호작용을 메인으로 하는 방송이 많이 등장할 것이다. 예를 들어 시청자 전원이 참여하는 퀴즈 프로그램 같은 걸 생각해 볼 수 있다. TV 앞에 앉아서 다 같이 문제를 푸는 거다. 방송 시간이 얼마나 걸릴 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전국 시청자 가운데 1등 한 명을 뽑는 일이 가능해진다. 특별히 출연을 위해 사연을 보낼 필요도 없고, 방송에 출연할 필요도, 방송국에 갈 필요조차 없어진다. 시청자 의견을 실시간으로 받는 것도 가능해지는데 이를 통해 슈퍼스타 K가 지금보다 더 매서워질 수도 있을 것이고, 시사 프로에서 국민의 정치적 견해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방송하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다.  (이런 일을 보다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스마트폰/패드와 연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지금 내가 말한 것들은 빙산의 일각의 한 부스러기에 불과하다.

우리 아이들의 교육 또한 크게 달라질 것이다. EBS 교육방송에서 시청자를 대상으로 시험을 치를 수도 있을 것이다. 틀린 문제를 바로 알려주고, 이에 대한 오답 풀이도 바로바로 해 줄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게 꼭 생방송일 필요는 없다. 이건 롤플레잉 또는 어드벤처 게임과 같이 정교한 시나리오를 짤 수 있기 때문이다. 미리 모든 가능성에 대해 영상을 찍어놓고 그 때 그 때 상황에 따라 보내줄 수만 있으면 된다. 모든 문제에 대한 오답 풀이 영상만 있으면 가능하다는 뜻이다. 스마트 TV는 여기서 더 나아가 스마트폰/패드와 연계하여 오답 노트를 만들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방송이 끝난 후 책상으로 돌아와 태블릿을 켜면 방금 틀렸던 문제들만 따로 정리되어 나타난다고 생각해보라. 단어장 손에 들고 다니던 과거는 이제 그만. 아이들의 손에는 스마트폰이 들려 있고, 방송의 연장선에서 학습 효과를 지속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와 함께 학원들도 분주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고 3 수험생들에게 익숙한 인기 학원들은 이미 독자적인 동영상 강의 체제에 익숙할텐데 앞으로는 TV를 통해 좀 더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학원들이 이미 독자적인 유통망을 구축했기 때문에 스마트 TV를 위해 체제를 바꾸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래도 유행이라는게 무서워서 지금의 체제를 고집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어린 아이들에게도 이러한 움직임은 굉장히 흥미로울 것이다. '우리 뽀로로 어디로 가는게 좋을까요?' 라고 TV가 아이에게 묻고, 아이가 '왼쪽 동굴이요!' 라고 답하면 왼쪽 동굴을 탐사하는 스마트 뽀로로를 생각해보라! 악당을 만난 뽀로로, 아이는 재빨리 리모컨이나 스마트폰을 들고 왼쪽, 오른쪽으로 흔들어 악당을 물리친다. 아이는 뽀로로가 될 수도 있고, 뽀로로를 돕는 친구가 될 수도 있다. 얼마나 멋진가! 이게 현실이 되는 순간 뽀로로는 우주를 접수할 것이다.

이러한 팟케스트 또는 앱 스타일의 방송은 더 이상 방송국과 함께 할 필요가 없다. 유통 체널이 앱스토어로 이동함에 따라 보다 투명한 유통망이 형성될 것으로 기대되는데, 이로 인해 방송국이 받게 될 타격은 엄청날 것이다. 인기 방송을 유치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지 않으면 오직 뉴스만 주구장창 방송하게 될 날도 머지 않았다. 아니지, 언론사가 방송국을 떠나 독자적인 유통 체널을 구축하면 그것도 끝인가... (그럴 일은 없겠지만) 어쨌든 방송사의 힘은 나날이 약해질 것이고, 정부는 이들을 어떻게 통제할지 몰라서 한동안 말도 안되는 정책들을 들고 나올 것이다. 이런 조잡한 과정이 지나고나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방송 소비 문화가 형성될 것이고, 방송에 대한 정의 자체도 변할 것으로 예상된다.

마지막으로 스마트 홈/오피스를 살펴보자. 일방적으로 방송을 뿌려대는 멍청한 TV가 인터렉티브하게 변화하고 네트워크에 연결됨에 따라 매우 다양한 유즈-케이스가 등장하게 되는데 건설사나 기업들은 특히 스마트 홈/오피스에 관심이 많을 것이다. IPv6가 나오게 된 배경이 '모든 전자기기마다 IP를 부여하고 네트워크로 연결하겠다' 라면, 스마트 TV는 그들 사이에서 관리를 담장하는 매니저로써의 역할에 가장 적합하다. 스마트 TV는 집 안 모든 전자 기기들을 네트워크로 연결하여 그것들을 관리하고, 사용자의 의도를 스스로 분석해서 사용자의 취향에 따라 능동적으로 반응하는 홈/오피스를 구축할 수 있게 될 것이다. TV가 무슨 수로 사용자의 의도를 분석하냐고? 이미 우리는 자신의 상태와 감정, 일정 등을 여러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로 공개하고 있다. 나를 예로 들면, 나는 트위터로 가끔 헛소리를 지껄이거나 재미있는 사진/기사/동영상을 리트윗하고 있고, 페이스북으로 감정의 기복을 표시한다. 마음에 드는 풍경이 있으면 인스타그램을 켜고 찍어서 공유한다.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모두 API를 공개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을 TV 내에서 엮으면 나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TV가 수신할 수 있게 된다. 그러한 연구는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지속되고 있으며 스마트 TV가 널리 보급되고 관련 기술이 보다 정교해지면 금방 대중 앞에 나타날 것이다.


빠른 인터넷과 놀라운 처리 능력을 자랑하는 PC가 이미 있기 때문에 스마트 TV는 진출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거 이미 PC로도 다 되요' 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PC와 TV는 그것의 목적과 접근성에 있어서 엄연히 다르다. TV는 PC보다 훨씬 더 쉽고 간편하게 다룰 수 있고, 온 가족이 모이는 거실 한 가운데를 차지하는 '집 안의 미디어 센터' 다. 쉽고 간편한 조작이라는 측면에서 현재 구글 TV는 꽤나 헛짓거리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이게 다 과정이니라... 지금 태블릿으로 인해 전자책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시도 등이 활발한 것처럼, 조만간 방송 형태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시도가 활발하게 일어날 것으로 기대한다. (사실 이미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아직 대중이 눈치챌만큼 시끄럽지 않을 뿐이지, 조용히 세상은 급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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